총 30시간 정도 플레이(2014년 플레이까지 56.8시간)
위쳐2를 드롭했다는 기억과는 달리, 스팀의 기록에 따르면 나는 2014년 경 위쳐2의 엔딩을 본 상태였다. 스토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UI에 대한 불평만 머릿 속에 남아있었다. 당시 내가 굉장히 예민한 시기였던 것도 있고, 위쳐2 자체가 불친절한 게임이라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아 이번에는 위키와 블로그 글들을 뒤지며 위쳐2를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제일 먼저, 과거 불만을 가졌던부분들을 다시 훑어보았다.
1. 불친절한 면들
1) 멀미를 일으키는 FOV : 처음 시작했을 때 위쳐1과 다른 FOV로 멀미를 심하게 했으며, 모드 외에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 번에 1시간을 넘게 플레이하지 못했고 전투 내내 서늘한 불쾌감을 느꼈다.
2) 소소하게 불편한 UI : 기본적으로 UI가 유저 친화적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힙하게 보이는 것에만 중점을 둔 느낌이었다.
일단 키버튼을 조작하려면 게임을 실행하기 전에 설정해야한다. 다시 말하면 키버튼을 바꾸려면 그 때마다 게임을 꺼야했다.
이러한 사소한 불편함은 결국 세이브에서 폭발하게 된다.
3) 매번 지워줘야하는 세이브 파일 : 이 게임의 최고 컨텐츠는 단연코 세이브 지우기이다. 이 게임은 세이브 덮어쓰기가 없다!!! RPG인데도!!!!!! 따라서 세이브 파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며 크러시를 지속적으로 유발한다.
게다가 쓸데없는 저 스샷 이미지 덕분에 세이브파일은 하나 당 두 개 파일... 스팀 클라우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으로 세이브 파일을 지워줬어야했는데, 5개 쯤 지울 때마다 게임과 스팀이 동시에 다운되고는 해서 그때마다 게임을 새로 틀어야했다. 솔직히 챕터3 플레이 시간보다 세이브 지우는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4) 세계관의 설명 부재 : 테메리아 왕국, 특히 수도인 비지마에 활동하던 위쳐1과 달리, 위쳐2의 무대는 북부 왕국들의 일부로 확장되며 주인공 게롤트는 왕과 귀족, 소서리스 같은 특권 계층과 자주 부딪히게 된다.
문제는 위쳐1을 상당히 열심히 플레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쳐2 중반까지 이 왕국들과 귀족 계층에 대한 개념이 불확실하였으며, 게임 내에서 이를 정확하게 알려주려는 시도 역시 없었다.
마법사들이 정치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흘러오게 된 것인지 저널 외에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비슷한 중세판타지 배경인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가 마법사라는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국가 별 특징과 역사를 제시한 것과 매우 다른 점이다.
이러한 불친절한 세계관은 분기별 선택지를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는데, 누가 어떤 배경에서 어떠한 동기로 행동했는지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그런 의도로 게임 시나리오를 짰다면, 뭐 그건 성공적이다).
5) 메인 스토리의 진행 구성 문제 : 위쳐 시리즈는 이상한 퀘스트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딴 생각하다 단서를 놓치면 혼란스럽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게임들이 메인퀘스트 A를 진행한다면, 진행 방식은 이렇게 될 것이다.
ㅇ 메인 A : 1-> 2-> 3 -> 메인 B의 시작
ㅇ 기타 서브 퀘스트
하지만 위쳐의 진행 방식은 이렇다.
ㅇ 메인 A: 1 -> 2 -> 메인 B: 1-> 2 -> 서브퀘: 1-> 다시 메인 A의 3 -> 메인 B의 3
ㅇ 기타 서브 퀘스트
특히나 챕터2의 경우에는 서브 퀘스트들이 메인 퀘스트와 독립적인 것처럼 생겨나지만, 실제로는 메인퀘의 중요 단서 역을 하면서 진행을 혼란스럽게 한다. 또한 챕터 1-3 동안 핵심 메인퀘스트는 계속 하위에서 갱신될 뿐 진행 정도를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이 게임의 가장 명확한 지시는 "진행이 될때까지 기다리자"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퀘스트 진행 순서가 잘못되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들이 있었다.
6) 스토리의 기승전결 문제 : 상기 문제들의 원인은 챕터3에 가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개발할 때 파이널 터치를 할 시간이 없었구나...
이 게임은 기승전결 중 전-결 과정이 매우 미흡하다. 록 무인에 들어서면서 생기는 모든 퀘스트들에 성의가 없으며, 메인 퀘스트조차 겨우 뼈대를 완성한 느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사위가 어디에 놓이는지 세이브파일을 왜 뒤집어 못 쓰는지 등은 마이너한 문제였을 것이다.
2. 여성관
- <위쳐1> 리뷰에서 1편의 여성관에 비판하는 내용을 적었는데, 2011년에 발매한 2편은 개미눈물만큼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단 게롤트나 트리스 같은 등장인물들이 성적인 농담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부분이 일부 삽입되었다(물론 강간 농담을 안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긍정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지도자 캐릭터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 캐릭터들은 여전히 불필요한 성적 연출("눈요기거리")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필리파와 트리스의 연출이 악의적이라고 느꼈다.
여기서 고백해야할 것은, 몇년 전의 나는 위쳐1에서 그나마 재미있던 요소였던(라고 생각했던) "게롤트와 섹스한 여성 카드 컬렉션"의 부재가 아쉽다고 이야기했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의 그 많은 재미들을 놔두고 여성이랑 잔 트로피가 아쉽다면 그 게임은 별볼일 없는 거였겠지.
3. 잘 만든 게임
위쳐2는 확실히 잘 만든 게임이다. 나는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드래곤에이지2보다 위쳐2의 시스템과 배경, 전투가 훨씬 완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스토리가 끝에서 무너지긴 했지만 캐릭터와 세계관은 잘 디벨롭되었으며, 배경은 아름답다.
세계관을 불친절하게 소개하긴 했지만, 국가나 인종, 마법과 역사, 종교 등 매력적인 요소들이 많으며 더 풍부한 스토리라인과 파생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전투는 정말 어려웠지만 연금술과 마법 등을 강제로 사용하게 되는 것은 뭐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다...
한 가지만 더 아쉬운 점을 쓰자면 많은 캐릭터들이 세계관의 성장에 맞춰 발전하였지만, 게롤트라는 이 멋진 주역은 주변 캐릭터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모든 루트를 본 것은 아니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특정 루트에서 게롤트는 이오베스/버논 로치와도 제대로 된 인터랙션이 없으며, 연인 관계인 트리스와도 감정적인 교류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성격적인 부분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게롤트는 반응은 하지만 변화하지 않는다.
위쳐3에서는 지적한 부분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플레이어로서 주요 관점이 될 것이다. 평이 좋으니 큰 기대를 하고 있다.
+ 넷플릭스에서 위쳐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스팀 세일 때 쓰론 브레이커도 주문했다. 이쯤 되면 애증의 위쳐 시리즈라 하겠다.
(이 리뷰는 2020년 12월 31일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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