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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위쳐1(2007)

by 치킨강정 2020. 12. 20.

총 30.7시간 플레이. 

 

위쳐 시리즈를 처음 플레이해본 것은 아니고, 2015-16년 경에 1-2편을 시도하였다가, 2편의 불편한 UI 때문에 접었던 기억이 있다. 컴퓨터 하드를 정리하고자 1부터 다시 플레이하기로 함. 

 

일단 위쳐1의 총체적인 감상은 "오로지 쾌락을 위한 게임". 

 

2015년 플레이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2020년 플레이하면서 거슬렸던 것에 대해 말해보겠다. 

 

 

1. 동선의 문제

 이전에는 고전 게임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했지만, 동선이 상당히 더럽다. 의미 없이 같은 지역 안을 빙빙 도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너무 지루하고 지겹다. 게다가 특정 지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레벨 이상이 되어야한다는 암묵적인 조건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더 짜증나는 일들이 발생. 

 

아니 이런 맵은 맵키를 눌렀을때 보여달라고 

크게 보면 동선의 문제라고 생각되어서 추가함. 위쳐1은 진행에 따라 본거지-> 마을 -> 수도 -> 수도 근교로 지역이 확장되는데, 이 과정에서 세계관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 왕을 만나는데도 어느 나라의 무슨왕, 이 나라의 특색은 뭐고 정치상황은 이렇고 이런 소개조차 부실하다. 저널을 열심히 읽지는 않지만 슬쩍 훑어보는 수준인데도(누가 이걸 다 읽고 있는지?) 눈에 크게 들어오는 것이 없다. 위쳐1에서는 괴물사냥꾼 역할만 했으니까 정보의 부재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국가 간 갈등이 전개되는 위쳐2로 넘어갔을때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바이오웨어의 드래곤에이지 시리즈가 자연스럽게 국제정치/국가정보/종족 정보 등을 전달한 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2. 전투의 문제 

이것은 전투가 아니라 훌라후프를 하는 리듬게임... 타격감도 전무하고, 타격이 들어갔는지도 애매하고 내가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위쳐가 혼자 칼춤을 추는 것을 보다가 끝나는... 그런 허망함이 있다. 특히 고전게임 특유의 자잘한 버그에 걸리면 그 전투 전체가 텄다. 기억으로는 위쳐2에서 새롭게 도입된 전투 방식도 그렇게 즐거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쾌락의 문제 

게임은 물론 쾌락을 위해 존재하지만, 위쳐는 그 중에서도 '남성'의 쾌락에 집중한다. 게롤트는 술을 마시고, 여자를 사고, 영웅이 되는 양판형 판타지의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뭐 다른 게임은 안 그랬냐마는, 위쳐1는 이걸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과 (돈을 내거나 안내거나 여간) 성행위를 하면 얻게 되는 카드들은 게임 내 여성의 취급을 보여준다. 모아놓으면 연쇄살인범의 컬렉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게롤트는 선택지에 따라 안정적인 가정을 원할 수도 있고, 여성들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줄 수도 있다. 그리고 한 명의 여성을 좋아하면서도 계속 다른 여성들과 잘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항상 피해자이자 게롤트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몸을 대가로 지불하거나/칭찬 혹은 경멸의 보상으로 몸을 섞는 '대상'의 역할을 한다. 

강력한 마법사로 대표되는 트리스 역시 마찬가지. 

 

강한 여성 캐릭터에게 주인공이 하는 대사를 보자. 

 

"결국 너도 여자였구나"가 이 게임의 여성관을 대표한다. 
여신급인 The lady of Lake도 남자가 필요하신댄다. 

 

그외 게임을 하며 새롭게 충격을 받았던 포인트들도 존재한다. 

여성이 남성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는 지나가면서도 도시 여러곳에서 들을 수 있다. 여성이 학대당하는 장면/언급은 수없이 나온다.
지금 주인공은 친구에게 연애상담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거절할 수 있는데, 어떤 성관계들은 게이머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진행된다. 
주인공이 절체절명 직전(보통 여성의 위기) 여성에게 몸을 요구하는 장면은 진짜 쓰레기같다. 굳이 자자고 말하지 않아도 저렇게 진행된다. 보통 RPG 게임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부분을 위쳐1은 굳이 강조해서 집어넣는다. 

 

이 모든 과정은 오로지 "남성"의 쾌락을 위해 전개되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 혹은 다른 성별의 게이머를 고려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성 게이머로서 이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서운하고 화가 난다. 다른 성별의 게이머를 위해 무언가를 하지는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 역시 위쳐1에게는 있었다(대부분의 RPG들이 이것을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인 점은 수십년간 게이머였던 나 자신도 몇년 전까지 이런 부분들에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기의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위쳐1은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조악한 그래픽이지만 이를 커버할 정도로 연출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중세 판타지를 아름답게 시각화하였다. 비슷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는 드래곤에이지 쪽이 스토리는 더 풍성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지만, 괴물사냥꾼이라는 미시적인 시각으로 시리즈를 시작하는 위쳐1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다만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강조하며 오로지 지정된 소비자들을 위한 게임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 시리즈를 낡고 아재스럽게 만든다. CDPR이 글로벌한 기업임을 인지하고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싸펑을 보면 아직 멀은 것 같지만). 

 

(이 리뷰는 2020년 12월 20일 쓰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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