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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가난의 문법(2020)

by 치킨강정 2022. 1. 4.

1달에 한 권, 책장에 묵은 책을 읽는 북클럽에 들었다. 첫 책으로 <가난의 문법>을 선택했다. 업무든 노는 것이든 하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자는게 나의 모토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자랄때만 해도 참으로 많은 어른들이 특정 대상을 가리키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어린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정말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프리카에 다녀오면서 그 말에 적극 반박하게 되었다. 세상에나, 성실함은 빈곤과 큰 연관이 없었다.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사는가? 그리고 그것을 보며 한국인인 내가 나의 처지에 감사해야하는가? (감사하면 대체 누구에게 감사하란 말인가?) 

"만약 부유함이 성실한 노동과 기업의 필연적인 결실이라면, 아프리카의 모든 여성들은 백만장자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amp;nbsp;

 

이 거대한 시스템에서 모든 것은 그저 운의 문제고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는 것이 명확했다. <가난의 문법>역시 우리 사회에서의 노인, 그 중에서도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실태를 묘사하며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중략) 개인의 선택이 우연한 연유로 잘못되었다고 한들, 왜 국가와 사회는 그녀를 구하지 않았을까?(p.127)

 

여기까지만 들으면 상당히 재미없을 것 같지만(...) 작가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상의 여성노인 "윤영자"의 삶을 만들어 노인들의 "가난"이라는 현상과 그 구조적 원인을 쉽게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특히나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윤영자의 하루를 시간대 별로 배치하여 목차를 만들었다는 점인데, 노인 정책 보고서에 나올 법한 내용을 최대한 일반 독자 대상으로 풀어쓰려는 의도가 돋보였다.

 

너무 자세히 쓰면 독후감 숙제의 제물이 될 거 같으니까 간략하게 인상적인 점을 나열하자면... 이 책은 국가가 은퇴 연령을 명시함으로서 노인들에게 더 이상 근로하지 않을 것을 명령하면서도, 노인 일자리 대상을 만들어 노인 취업률을 높이려고 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면서도 비공식적인 일자리에서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그리고 정부, 부유한 계층, 젊은 세대, 산업들은 이러한 노인들을 착취하면서도 노인들의 빈곤 문제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노인들의 노동은 "비공식적"이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므로) 착취한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인들을 보며 나머지 세대들은 "인생은 자력구제(노오력)"이라는 사회의 모토에 자신들 역시 빈곤노인층을 전락할까 전전긍긍하는 악순환을 경험하고 있다.  

 

작가는 이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노인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확장할 것은 제안하는데, 이건 최근 본 유현준 건축한 교수의 영상과 맞닿는 부분이 있어서 붙여본다. 생각해보니 나도 최근 노인들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다. 노인들과 일하는 시간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다. 최근 집 주변 길거리에 가로수들을 뽑아내고 벤치들을 쫙 깔길래 예산이 남았나 생각했는데 이해가 되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노인의 보편적인 복지 확장(나이가 들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과, 단기적으로는 시혜적이지 않고, 노인의 적성과 능력, 상황을 고려한 다양한 일자리 정책이 필요하며, 이를 보완할 공동체 활성화 지원(경로당 등)이 필요하다는게 작가의 주장이다. 

 

나도 노인들이 은퇴해야 청년 일자리가 생기는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건 누군가가 뇌에 노오력칩을 심어두었던 게 아닌가 싶다. 반성한다. 청년세대가 노인들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전체적인 파이가 커지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결국 모두 노인이 될 것이다. 앞서 노인이 된 세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결국 청장년 세대에게는 희망이 될 것이다. 결국 나의 아버지 세대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게 앞날을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여간 작가가 자신의 연구의 한계점을 알리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아무렇게나 쓴 감상문보다 훨씬 섬세하게 쓰여진 글이니 노인 문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나의 삶과 관계가 있을지, 30년 후의 나를 위해 현재 사회 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생각하면서 읽어보기 좋을 것 같다. 

 

(이 글은 2022년 1월 4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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