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페르세폴리스(2004/2019)

by 치킨강정 2022. 10. 6.

원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먼저 읽고 있었는데, 이란에서 마흐사 아마니 사망 관련 시위가 일어나면서 불쑥 이 책을 충동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페르세폴리스>에 대해서는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너무 읽으면 괴로울 것 같은 책'들을 기피해왔다. 안 그래도 세상은 괴로운 일 투성이인데 굳이 몰입을 유발하는 책을 읽어서 괴로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슬람, 그 중에서도 강경보수로 알려진 이란에서 사는 여학생... 이미 키워드만 나열해도 마음이 갑갑해졌다. 

 

그 이후로 세월이 흘러 으른이 된 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란과 히잡 문화에 대해서 좀 알수 있겠지 라고 책을 샀다가 카페에서 두 차례나 울었다... 

 

결론만 말하면 이 책은 물론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란의 근현대사를 바라본 소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1부는 이란에서 자란 어린 시절, 2부는 이란-이라크 전쟁 등 이란 내 안보 불안이 극심해지면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란의 근현대사는 생각보다 매우 많은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페르세폴리스>는 개인적인 사건들을 예를 들며 매우 쉽게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정권으로 넘어가던 때의 변화는 매우 빠르고 극심해서, 이 과정에서 다행히 작가의 가족은 살아남았지만 많은 주변인들이 죽었다.  

웹상에서 매우 유명한 1970년대 이란 여성과 현대 이란 여성들의 옷차림
이 극심한 변화를 어린 작가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천만다행으로 작가의 부모님은 굉장히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작가의 반골 정신을 응원하고 지지한다. 

아마 작가의 부모, 특히 아버지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면 작가의 인생은 크게 괴로워졌을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도덕경찰에 대한 이야기도 당연히 나오는데, 생각보다 꽤 역사가 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작가 역시 사망한 아마니처럼 사회와 통제에 나름 거세게 반항한다. 이때 젊은 세대가 한 반항의 정도를 보면(립스틱 바르기, 손목이 드러나게 하기, 옷차림에 유행을 반영하기, 도덕 경찰 몰래 파티 열기 등)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가 얼마나 많은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시위대는 히잡 착용을 '반대'함으로써서 정권의 압제 자체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지금까지 이란 정부의 말에 반대는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이미 이번 시위의 목적과 의미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린 시절을 다룬 1부가 매우 감정적이었다면(1부 마지막에서 너무나 유사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열할 뻔 했다)  2부는 조금 더 담담한 어투로 유학과 다시 이란에 돌아와 겪는 학생 생활, 결혼과 이혼 과정이 그려진다. 

 

사실 비싼 돈을 들여, 그것도 전쟁 와중에 시작한 유학이 망했다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이 겪었던 고통과 일탈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2부는 1부에 비해 많이 감정적인 면을 건드리지는 않지만, 장기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독과 정체성 혼란을 공감가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감탄스러웠다. 

연출 역시 묵직하게 마음을 때린다.

작가의 이야기로 이란 사회 전체를 함부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 작가는 특별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기질 역시 남다르므로. 다만 작가가 겪었던 이란의 사회적 과제들은 2022년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으며, 현재 이란의 청년들은 전 세대가 풀지 못한 숙제를 해나가는 중이다. 이란 시민들이 이 기나긴 투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책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악관의 사생활(2015)  (0) 2022.05.01
아연 소년들(2017/1991)  (0) 2022.03.26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2008)  (0) 2022.02.27
가난의 문법(2020)  (0) 2022.0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