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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호라이즌 제로 던(2017)

by 치킨강정 2022. 1. 31.

67시간 플레이

명작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던 호라이즌 제로 던을 드디어! 해보았다. 사실 끝내야 하는 게임들은 산더미같이 많지만... 후속작인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가 2월에 나온다는 소식을 들으니 뭔가 그전에 플레이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1. 명작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임 

 플레이하며 제일 먼저 다른 게임들의 레퍼런스가 눈에 띄었다. 몬스터 헌터/언차티드 시리즈를 많이 언급하던데, 두 게임 모두 PS가 없어서/취향이 아니라서 플레이해보지 못했고, 위쳐/젤다 야숨/매스 이펙트/엘더스크롤/폴아웃 등의 영향이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은 많은 레퍼런스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아주 신선하다기 보단 좋은 재료들을 가져다 써서 비슷하게 좋은 것을 만들어낸 느낌이다. 

 

2. 정을 붙이기 쉽지 않았던 캐릭터들 

 보통 이런 전형적인 영웅 서사 주인공들에 잘 이입하는 스타일인데도 에일로이는 정이 잘 붙지 않았다. 에일로이의 어린 시절부터 스토리가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에일로이의 성장에 함께 했다는 느낌도 없었다. 에일로이는 플레이어 없이도 잘 크는 캐릭터였다(...). 잘 생각해보니 에일로이가 크게 감정적인 면을 보인 건 양아버지 관련한 초반 부분뿐이었고, 이후 애착을 가진 동료 캐릭터도 딱히 없었다. 에일로이는 세계관에 개입하는 이방인 영웅으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정착하지도 못한다.

에일로이의 최대 감정 표현: 어깨 두드리기

 세계 역시 에일로이에게 적대적인데, 어디에서나 튀어나올 수 있는 로봇들과 인간 적들+함께 나오는 불협화음 OST는 필드 전체가 에일로이에게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OST가 바뀌기 시작하는 전환 부분이 너무 많다 

그럼 마을같은 비전투지역에서라도 뭔가 마음 놓을 곳이 있으면 좋은데, 가장 대화가 많은 NPC조차 에일로이의 편이 아니며, 마을 지역 내에서도 에일로이를 위한 공간이 없었다(이후 뒤로 갈수록 집이라도 한 채 주지 싶었다 위쳐도 집이 있고 폴아웃3의 방랑자도 집이 있는데!). 

 

3. 인류애를 느끼게 하는 스토리 

그럼 어디서 이 게임에 대한 애착을 느꼈는가? 재미있게도 고대인 부분이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에일로이의 주변 삶보다 이미 1천 년도 전에 멸망한 고대인들의 사투가 흥미진진했다. 

고대인 캐릭터들은 에일로이와 전혀 만나지 못하지만, 어떤 NPC들보다도 애정이 가는 캐릭터들이었다. 스포라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에일로이가 아포칼립스 이전의 시대의 비밀을 풀어나갈 때 비로소 게임을 진행할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4. 신경쓰이는 부분들- 인종과 민족에 대하여 

사실 게임을 처음 진행할 때는 게임 내에 여러 인종들이 섞여있는 모습이 굉장히 좋게 다가왔다. 게임 내에서 민족의 차이는 확연하지만, 인종들은 구별 없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많은 민족들이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이미지를 차용한 점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특히 에일로이가 점점 고대인의 지식을 습득하면서, 현존하는 민족들의 '야만적'인 부분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과연 이러한 이미지를 북아메리카 선주민 사람들이 좋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으이구 현대기술을 모르니까 저러는구만 하고 웃었는데 점점 안 웃겨짐

찾아보니, 이미 이것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있었고 프로불편러 어쩌고 하면서 격론이 있었다는 점을 알았다(처음 이를 지적했던 Dia Lacina는 글을 삭제했다) 물론 게릴라 게임즈 측이 답한 것처럼 이 게임에는 북아메리카 선주민뿐만 아니라 아즈텍, 바이킹, 켈트, 이누이트 등 여러 민족적 레퍼런스가 섞여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이미지는 북아메리카 선주민의 문화이며, 최근에는 사용이 조심스러워진 단어들(tribe, brave 등)이 들어간 것도 사실이다. 

미국 역사를 잘 모르는 동북아시아인조차 이 게임의 많은 부분이 북아메리카 선주민 문화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게릴라 게임즈가 주장한 것처럼 많은 부분을 조사하고 고려했다면, 현재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이너리티인 북아메리카 선주민들의 감수라도 받았으면 어땠을까. 빌려온다면 값을 치르고 빌려왔어야 한다. 그게 소수자의 것이라면 더욱더. 

 

5.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에서는 따라올 게임이 없다. 

이 게임은 지난 어떤 게임보다도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위쳐3에서 여성 노인가 나체로 살해당한 씬이나 보다가 이리로 오니 진짜 천국이 따로 없다 

먼저 주인공이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여성 전사로 고정된 것은 여성 게이머인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사고 싶었던 만화캐릭터가 그려진 신발 CF는 항상 마지막 0.5초에 "여성용(항상 핑크)도 있어요!"로 끝났다. 게임을 하면 항상 여성 캐릭터는 힐러였고, 마지막에 납치되어서 죽었다(왜 같은 파티에 있는 남자 주인공이 exp를 받아서 레벨업하는지 이해 안 가는 현상은 덤이다). 이런 취급만 받아오다가 호라이즌 제로 던을 보니 시대가 변했음을 느낀다. 

여성, 남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캐릭터들이 많이 나왔다. 사실 사회에서 모두가 강력한 전사나 리더일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호라이즌 제로 던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사회적 맥락이 제거되어 있다. 여성이 겪는 차별, 어려움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여성 캐릭터들을 고심해서 넣은 흔적들을 보면 이는 제작진의 의도적인 배치라는 생각된다. 세상이 멸망한지 천년이 지난 새시대에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리더십을 가지고 동등한 대우를 받는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저 세상도 나쁘지 않아보이는걸. 

 

6. 기타 언급하고 싶은 부분

[의미없는 선택지] 

굳이 왜 스토리에 반영도 안 되는 의미 없는 선택지를 넣었는지, 그 정도의 스크립트 변용도 어려웠는지... 이 부분은 불만스러웠다.

심지어 선택지를 안 눌러도 이미 누른걸로 상정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장갑은 왜 안 꼈던걸까?] 

에일로이가 장갑을 꼈으면 방지할 수 있었을 감전사고들이 몇 건 있었다...

[오디오 파일, 이것이 최선?]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고대인들의 정보는 세계관, 스토리와도 직접 연결되는 중요한 자원들이다. 하지만 2분이 넘는 오디오 파일을(개열받게 다른 NPC/이벤트의 방해를 받으면 끊겨버림)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가만히 이 긴 파일을 들어야한다....

[아름다운 그래픽] 

2017년 쯤 되면 게임들은 영화에 가까워진다. 자연경관은 어디를 찍어도 아름다웠다. 

날씨 효과를 스토리 연출에 사용한 부분도 마음에 들었다.
로봇들도 자주 보면 귀여운 디자인이다

아, 한 마디 더 하자면 액션게임치인데 67시간쯤 지나자 로봇들과 일기토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 게임에서 누가 쫓아오면 패닉에 빠졌는데,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 전투에 자신 없는 분들은 난이도를 쉬움으로 하고 도전하면 충분히 하실만할 것 같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게임 

이 게임이 아주 뛰어난 명작이라던지 아주 유니크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게임을 진행하며 정이 안 붙는다고 투덜대던 내가 엔딩에서 느꼈던 감동은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캐릭터를 사랑하게 해주는 게임들은 많았지만 지구와 인류를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게임은 흔치 않았다. 

지구를 사랑해야지...ㅠㅠ환경을... 사랑하자ㅠㅠ....

엔딩을 위해서라도 게임을 한번 플레이해보시기를 바란다. 또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DLC를 엔딩 후에 플레이하라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DLC를 게임 엔딩 전에 플레이할 것을 권한다. DLC가 하나로 완결되는 느낌은 아니며, 엔딩의 여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2022년 1월 31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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