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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사이버펑크 2077(2020)

by 치킨강정 2022. 9. 12.

88시간 플레이

나오자 마자 모두의 조롱을 받으며 폭망했던 사이버펑크 2077을 드디어 해보았다. 

 

CDRP 게임은 나온지 3년 후가 완성본이라고들 하지만, 어느 순간 사이버펑크를 너무 해보고 싶었다. 어떤 게임이길래 지금까지도 조롱을 받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전반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 

솔직히 말하면 1.5-1.6 버전 기준, 명작인 위쳐3보다 아래지만 위쳐2보다는 괜찮은 진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엔딩들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이 미완성인채로 발매된 것을 감안하면 위쳐2보다 마무리가 나았다. 위쳐3도 사실 위쳐 3 본편 엔딩보다는 DLC들로 마지막 여운을 다 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이후 DLC가 추가되면 사이버펑크의 리뷰들도 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 아니 걱정했던 버그는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게임이 튕기는 일도 거의 없었고, 간간히 보이는 버그들도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였다. 아직도 버그 땜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기 때문에 내가 운이 좋은 걸 수도 있다.  

 

유명한 이 버그를 플레이 30분만에 마주치기는 했다
다만 누워있는 애들 포즈가 다 똑같은 것이 AI 모션을 다 고치지는 못한 모양이다
자학하려고 넣어둔 것 같기는 한데... 막 출시되었을 때 봤으면 죽빵 날리고 싶었을 것 같긴 하다

 

 

<좋았던 점>

 

1. 즐거운 사이드퀘와 풍부한 캐릭터 빌딩 

 

복붙인 습격퀘를 제외하고 사이드퀘는 재미있었다. 특히 여캐들과의 퀘스트라인은 즐거웠다(상대적으로 남캐인 리버의 퀘스트는 임팩트가 약했다... 큰 불만은 없다...). 다만 메인퀘스트만 주욱 했으면 볼륨 면에서 조금 아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차량 몇 개 빼곤 거진 다 끝냈다!

 

V를 포함하여 주요 캐릭터들에게 정이 잘 가도록 퀘스트를 잘 배치해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사이버펑크 장르 자체가 취향이 아닌데... 라고 생각했지만, 슬슬 캐릭터들에게 정이 붙으면서 나이트 시티의 전경도 익숙하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 엔딩롤에서 영상 메시지 형식으로 지난 캐릭터 간 관계를 다시 리마인드 해주는 건 꽤 감명깊었다. 

 

조니의 경우 처음엔 죽는 편이 인류에 복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브이보다 더 성장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2. 한국 성우 풀 더빙 

 

 

 

한국 게임 역사상 이렇게 정확한 발음으로 씨발/좆같네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성우들의 열연으로 게임에 몰입하기 편했고, 앞으로 다른 게임에도 한국 더빙을 즐길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이유만으로도 한국에서 사이버펑크가 더 팔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3. 조니가 피식대학 쿨제이를 닮았음

진짜다

4. 기타 

 

- OST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락을 잘 듣지 않아서... 

그래도 Chippin' in와 Never Fade away, Night City이 나올 때는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 사이버펑크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서 나에게만 새로운 걸 수도 있는데, 사이버펑크 2077에서는 현실의 장애가 그저 각자의 개성 정도로 인식되어서 놀라웠다. 한 쪽 눈이 없거나 팔 다리가 없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되는 세상이라면 더 이상 신체적 장애라는 개념은 없게 되겠지? 더 튼튼한 척추를 새로 심으면 되고, 눈은 기계로 교체하고… 다만 여기서도 빈곤층은 불법 닥터에게 불량품을 이식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 이외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오마쥬들이 아주 많이 있는데, 찾아보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일 것 같다. 유튜브에 잘 정리되어 있다. 

요런 느낌이라던지

 

<싫었던 점>

 

1. 악의가 느껴지는 섬광 

 

그렇게 중요한 장면에 넣는 것도 아닌데 왜 온오프 기능을 안 달아주는데

 

나는 광과민성 발작은 없지만 편두통이 심한 사람이라서 빛에 예민한 편이다(편두통은 강한 빛으로도 촉발될 수 있다). 누군가는 경고문이 있는데 굳이 왜 해? 라고 생각하겠지만 브레인댄스 시작과 완료 시에만 섬광 효과가 있으니 그때만 눈을 가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 회상이 있는 특정 퀘스트에서 모든 컷 씬의 편집을 섬광으로 연출했고, 이때는 어떠한 경고 모션도 없었다. 결국 게임을 며칠 쉬었다. 

 

이 화면을 10번쯤 보았을 때 느꼈다. 제작진에게 악의가 있다....

 

이 게임에서 컷씬을 넘기는 데 여러가지 패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섬광을 썼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악의를 느꼈다. 섬광 이펙트에 큰 의미가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니 섬광을 끄는 옵션을 넣지 않고 게임 앞에 경고문 하나 달아 놓은 것도 괘씸했다. 위쳐 시리즈도 재미있었지만 중간 중간 좆같았다. 하지만 위쳐는 내 뇌를 튀기려고 하지는 않았다. 

 

 

2. 가슴과 거시기를 떼었다 붙였다 한다고 성평등한 게임인 건 아냐 

 

 

약 30년간 게이머로, 그것도 RPG를 주로 하는 게이머로 살아왔는데 음경과 질, 유두와 음모까지 설정하게 하는 게임은 사이버펑크 2077이 처음이었다. 딜도 들고 뛰어다니는 세인츠로우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생물학적/사회적 성은 중요한 일이지만, 음모 모양까지 세세하게 설정할 필요는 없다. 의도가 불순하다고 느꼈고, 이 정성으로 게임 완성도나 올리지 하는 타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성취향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며 섹스돌(심지어 이들은 설정 상 실제 인간이기도 함) 가게에서 섹스돌을 고르게 하는 장면은 역겹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섹스돌 가게에 들를 때 플레이어는 아래 대화를 지나치게 된다.

 

CDPR에서 인셀 냄새 나요

 

메인 스토리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당한 고어 영상 초반을 잠깐 체험하게 해주는 부분도 불쾌했다. 게이머에게는 이 부분을 뛰어넘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하드코어 고어 영상(괜히 제목에서 유머를 넣으려고 해서 더 기분나쁜)들이 존재한다는 걸 굳이 보여주는 부분도 별로였다. 위쳐 때도 이야기했지만 CDPR은 소재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을 선택지가 있는데도 자기들 낄낄대자고 전시해버리는 점이 정말 별로다. 

 

 

나는 이 지점에서도 한계를 느꼈다.  

케리는 나의 좋은 동료 캐릭터이고, 내 성별이 어떻든 나에게 잘해준다. 하지만 한 편으로 그는 자신의 노래를 커버한 아시안 여성 아이돌에게 쓰레기 같은 욕설을 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아주 많이 있다. 나에게는 친절하지만 내가 포함되어 있는 특정 집단을 욕함으로서 나를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내가 현실에서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용인하는 데에도 많은 인내심이 드는데, 굳이 게임에서도 같은 경험을 해야 하나. 

 

 

이 부분은 특히 일본의 베이비 메탈이나 퍼퓸이 생각나서, 인종차별도 섞여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는 없었다. 물론 퀘스트 자체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에 있었던 아시안 여성에 대한 막말이 없던게 되는 것은 아니다.  

 

3. 그냥 어디서 가져온 별 의미 없는 담론들, 그런데 인셀식 조롱을 곁들인 

 

아우터월드와 사이버펑크 둘다 자본주의 비판이 주요 소재 중 하나인데, 사이버펑크 쪽은 담론 자체를 조롱해버리는 인셀 감성이 있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사이버펑크는 이 주제에 진지하지 않았다. 아우터월드는 "풍자"로 자본주의를 유머러스하게 비판하지만, 사이버펑크는 자본주의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너도 조롱의 대상이다. 

 

조니가 기업에 저항한 건 사실 여친을 구하기 위해, 혹은 이기적인 놈이라서였고, '젊은 날의 치기'로 인한 불장난에 가깝게 묘사된다.  반자본주의적 메세지를 퍼뜨리는 메시아는 그냥 해커의 장난이었다. 기업에 반대하는 노조들은 습격의 대상이거나 죽어 있는 시체에 불과하다.  물론 기업 상대든 누구든 돈 받으면 일하는 용병인 V가 반자본주의 혁명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대부분의 퀘스트에서 V가 죽은 노조원 시신이나 뒤지게 해둔 걸 보면 한계는 명백하다.

 

4. 기타 

 

- 운전을 정말 그지같이 만들어 놓았다. 1인칭으로 하면 멀미까지 하니 꼭 3인칭으로 바꿔서 운전하기 바란다. 차량보다는 오토바이 쪽이 운전하기 편하다. 

- 모든 로맨스씬을 1인칭으로 만들어놓은 게 진짜 깼다. 제가 굳이 여캐의 소중이를 봐야할까요? 모니터로 돌진하는 캐릭터의 입술을 봐야할까요? 차라리 유니콘을 탔던 게 나았다. 

 

 

총론: 떠도는 평보다는 나쁘지 않았고, 이런 1인칭 RPG 게임을 즐겼거나 위쳐 시리즈에 익숙하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위쳐3 정도의 볼륨이나 퀄리티, 묵직한 분위기를 기대하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불쾌한 부분들은 미리 인식하고 있다면 좀 더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9월 12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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