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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페르소나3 리로드(2024)

by 치킨강정 2024. 5. 13.

105.8 시간 플레이 

 

<<아래 강력한 스포있습니다>>

 

 

 

어떤 것은 너무 사랑하면 끝을 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하루 유한한 날들을 보내는 것도, '눈을 감는다'는 선택지를 누르는 것도, 리뷰를 쓰는 것도. 

 

페르소나 시리즈를 2011년 페르소나3 포터블(2009)로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엔딩에서 주인공이 죽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2024년 페르소나3 리로드(이하 P3R)를 다시 잡기 전까지 흐릿하게 남은 인상은 '엉망이고 이해할 수 없는 동료들(특히 준페이)' / '차갑고 리더쉽 없는 주인공' 정도였다. 엔딩의 느낌은 아련하긴 했지만 수수께끼에 가까웠다. 

 

2024년에 다시 이 게임을 만났을 때는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주인공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시작부터 알고 나니 초반부터 수상쩍은 복선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문제가 있어보이던 주인공과 동료들의 관계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번 플레이에서 새롭게 깨달은 몇 가지 점이 있다. 

 

 

- 주인공을 포함하여 등장하는 모든 주요 캐릭터들은 전부 가족의 빈 공간이 있으며, 스토리 상에서 이들을 보호할 마땅한 어른이 없다. 

 보호자가 있었던 페4와 페5와 달리, 페3의 미성년 캐릭터들은 자조(自助)적으로 움직이며 갈등 상황에서 미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현실적인 장면은 다른 시리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의지가 되는 선배들도 심각한 마이웨이로, 갈등 상황을 적극적으로 중재하지는 못한다. 

너도!!! 꼬맹이야!!! 너도 그냥 고딩이야!!
준페이의 나약함이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쪽이 리얼한 청소년인 건 알고 있지만 항상 다정했던 아이보 하나무라 요스케가 그리워진다...

 

- 기억 속에서 멍하고 차가웠던 주인공은 (대화 선택지에 따라 다를 수는 있으나) 주변에게 다정하고 살가운 캐릭터였다.

 

주인공과 동료들에게 닥친 비극들은 일개 고등학생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재산도 집도, 가족도 없는 주인공은 주변을 격려하는 수 밖에 선택지가 없다. 쇼맨쉽으로 이끄는 조커나, 앞에서 이끄는 알파남 나루카미처럼 적극적인 리더쉽을 보이지는 않지만 현실적인 스탠스로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적재적소에 필요한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 모든 캐릭터들이 동등하게 시작하는 4, 5와 달리 3는 주인공이 후발자로 시작하며, 현장 리더 외에 그다지 리더쉽을 펼칠 기회가 없다. 이러한 위계는 초반 그룹의 구심력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초반 주인공에게는 큰 동기가 없다.
다만 이러한 선배들은 고아인 주인공에게 큰 버팀목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 메인/사이드 스토리가 일관되게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초반부터 주인공이 죽을 것이라는 복선이 강하게 존재한다. 

 

페르소나 시리즈들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페3: (한 개인이) 어떻게 살고 죽을 것인가
페4: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페5: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고 나아갈 것인가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강력한 주제의식은 다른 시리즈보다 훨씬 직접적인 방향으로 게이머에게 전달된다. 

 

게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

 

그런데 게임을 플레이하면 플레이할 수록 주인공을 놓아주는 게 어려워졌다. 죽음에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삶을 열심히 살아가자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사랑할 수록 떠나보내기가 어렵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래서 요즘엔 노가다를 잘 하지 않지만...

전서인출 100% 달성
커뮤 100% 달성
레벨 99
최강의 존재 퇴치(개노가다였음)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았다.

 

여기까지 했을 때도 엔딩 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엔딩을 피하는 것이 곧 죽음을 피하려는 것 같았다. 게임을 산 게 아니라 유사죽음체험을 산 느낌이었다... 엔딩을 보았을 때는 새벽 내내 오열한 채 출근했다. 

반려 게임... 아니 반려 주인공을 잃은 이 기분...

 

정작 P3P를 끝냈을 때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오히려 엔딩을 알고 본 P3R이 더 마음에 와닿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너의 기억 전주만 들려도 눈물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고... 리뷰도 미룬 채 몇 주를 고통받던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굿즈 구입뿐만 아니라...(국내 세가 팝업은 실패ㅠ)
피규어 구입...

 

 

페르소나 2024 라이브, 6월 후기 커밍 쑨

 

 

나의 주절거림만으로 리뷰를 끝낼 수는 없으니 장단점도 짧게 써보겠다. 

 

 

장점 

 

1. 아름다운 UI, 업그레이드된 디자인 

 

페르소나 시리즈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UI는 이번에도 관심의 대상이었는데... 그들이 또 다시 해냈다!

차갑고 아련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이전과 비교하면 그저 아름다워졌다.

 

2. 그냥 존재 그 자체

(페르소나4도 리메이크 해주세요 돈 낼게요)

 

 

단점 

 

1. 탑이 끝이 없어요 

 

P3에서 팰리스 대용으로 올라가야하는 탑은 총 263층. 몇 십층 마다 분위기가 전환되기는 하지만 층마다 구조에는 변동이 없다. 전투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반부터는 지겹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페르소나5의 3차원적 팰린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P3R의 던전은 더욱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몇 십층 올라가다보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다

 

2. 사뭇 심심한 초반부 

 

페르소나3의 각성 장면은 꽤 유명한 편이지만, 극한 상황에 몰리며 각성했던 페르소나4나 5에 비해 밍숭맹숭한 감이 있다. 그리고 초반 캐릭터들의 동기가 애매하고 빌드업이 느리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는 P3가 오래된 작품이며 4, 5의 원형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3. 떨어지는 커뮤의 매력  

주변 캐릭터들이 좋게 말하면 친근하고, 나쁘게 말하면 매력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심심하던 동료 퀘스트는 이전 버전에 비해 많이 보강되었다. 

미야코와 카미키, 미식왕과 헌책방 부부의 이야기는 좋았다. 특히 미야코 성우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4. 낮은 애니메이션 퀄리티

 

여전히 전통을 살려 애니메이션을 넣기는 하였는데, 썩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몰입이 깨질 때가 많았다. 이번 작에서는 많은 부분을 3D로 바꾸었던데(각성 씬, 아이기스 등장씬 등),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전면 3D로 교체해주면 좋겠다.

 

 

상기 단점들은 사실 마이너한 것들이며 P3R은 마음을 울리는 수작이다. 특히 페르소나 시리즈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P3R을 가장 먼저 플레이하기를 권한다. 

 

 

(이 글은 2024년 5월 13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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