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플레이
<<아래 강력 스포있습니다>>

블로그를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오랜기간 DC코믹스 배트맨 패밀리(특히 로빈 중에서도 팀 드레이크)의 팬이었다. 그 덕질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은 한 3년 정도 해외 거주를 하면서였다.
캐릭터들은 여전히 좋아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슈퍼히어로물의 가치가 제3세계에 거주하던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게 되었다. 슈퍼맨? 미국을 지키겠지 뭐. 배트맨? 고담을 지키겠지. 한국에 사는 나는 동맹국이니까 가끔 지켜 주려나? 근데 제3세계 사는 나는 확실히 안 지켜줄 듯. 냉전 때처럼 특정 국가를 주적으로는 못 둘 테니 정기적으로 외계인이랑 싸우겠지 뭐. 괜히 캐릭터들 죽였다 살렸다 하고.
그렇게 내 덕질은 식어갔다. 아직도 산더미 같은 페이퍼백들과 이슈들을 집에 놔둘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디스패치가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시큰둥했다. 아무 정보도 없었지만 저 포스터만 봐도 주인공은 초능력이 없는 양반이겠구만. 디스패치니까 행정지원직이겠구만. 다행히 플레이타임이 짧기도 하고 휴직 전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해치워버리기로 했다.
총평 먼저)

전형적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식 히어로물. 잘 만들었다. 기업명이 애드혹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알던 텔테일 게임즈다. 하지만 어둡고 무거웠던 전작들에 비해 훨씬 가볍고 즐거워졌다. 킬링타임인 줄 알고 틀었는데 생각보다 잘 만든 히어로 영화 같달까. 처음 에피소드 3까지는 손이 잘 안 가는데 그 이후로는 진행이 스무스하게 이어지면서 유쾌한 액션영화로 끝이 난다.

클리셰란 클리셰도 다 붙었다. "빌런→ 빌런 짓을 그만두고 과거 잘못을 회개하려 함 → 좆됨 → 난 어차피 좆된 몸 → 또 빌런 짓"의 사이클은 슈퍼히어로물 장르에서 너무 자주 쓰이는 스토리다. 공적의 삶/개인의 삶 다 망해버린 히어로가 다시 일어나는 스토리는 또 어떤가. 근데 뭐, 클리셰를 싫어하는 슈퍼히어로 팬 있던가??

디스패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투 시뮬레이션이 새로 도입되었다. 텔테일 게임즈에 트러플 감자칩의 트러플 오일마냥 아아주 희석한 엑스콤을 한두 방울 떨어뜨린 느낌이다. 지루할 수 있는 어드벤처 노벨 스타일에 히어로 파견을 넣어 몰입도를 올렸다. 또한 이런저런 상호작용들이 많아 캐릭터들에게 애정을 느끼기 쉽게 해 준다.
스토리 진행에 대해 좀 더 말하면)

개인적으로 에피소드 3까지는 별 매력 없는 평이한 게임이었다. 특히 에피소드 3의 해고 이벤트는 괜히 들어가서 스토리 진행의 개연성을 해치는 느낌이다. 한 직원은 미국회사 시스템으로 가차 없이 해고해 놓고 다른 친구들은 봐준다? 그리고 부하 직원과 연애한다? 그리고 또 해고해서 빌런 짓을 한 친구를 다시 슬쩍 받아준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된다? 이렇게 개판으로 인사할 거면 처음부터 자르지 말았어야지. 내 생각엔 다음 분기 인사고과에서 또 한 명 잘리게 될게 분명하다. 이럴거면 설정을 국영기업으로 하던가...


사실 보험 같은 구독용 히어로 대기업? 파고들면 자본주의 부조리 끝판왕일 것 같지만 이번에 나오지 않았으니 패스. 이후 시즌에 나오지 않을지...


그 이후 팀 빌딩을 하는 에피소드 4-6까지의 흐름이 정말 즐거웠어서 슈퍼히어로들의 왁자지껄한 티키타카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에피소드 8의 전투 연출은 아주 좋았다. 클라이막스(히어로들이 비겁하게 다구리 하는 씬)을 팀의 특색에 잘 맞춰서 정신없는 와중 잘 시각화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엄청 뛰어나다기보단 좋은 연출과 진행으로 드라마를 끌고 나갔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처음에는 주인공이 뭐 이렇게 생겼나 싶었는데, 갈수록 진짜 느좋남이다. 물론 히어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하기는 한데 그래도 이 바닥에서 그나마 큰 정신적 문제없는 선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sarcarstic한 조크도 선을 잘 넘지 않고, 친화력도 좋고 상황판단도 빠르다. 그렇다고 마냥 호인도 아니고.



물론 그런 생각은 든다. 저렇게 성격 좋고 리더십 있는 남자가 있다면 왜 다들 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히어로팀이 있었는데 얘는 왜 Z팀을 맡기 전엔 친구조차 없어 보이나? 아니 이거 공대생 너드남의 환상 아니야?(그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료 캐릭터들)

챕터 3까지만 해도 동료 캐릭터들은 이 상태였는데

챕터 4부터 급격하게 정 붙기 시작하여 그들은 나의 자식들이 되었다. 물론 항상 너네 참 좋다라고 생각할 때마다 싸우고 있지만....

특히나 플람베 이 배꼽때 냄새 같은 남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https://youtu.be/SsG6YORd8LE?si=a1FouJ0UlLmVaesQ
Bershy의 Radio가 나오던 순간은 이 게임의 정신적 클라이맥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빌런 캐릭터)


묘사되는 힘이나 주인공 아버지와 관련된 배경에 비해 서사가 되게 납작하다. 의도적으로 주인공과 동료 캐릭터에 몰아줘서 그런가? 5개짜리 이슈에 나오는 별 감흥 없는 빌런 같다. 특히 마지막에 개를 인질로 잡는 거 진짜 찌질했다.
특이한 점)
노출 옵션이 있어서 그대로 놔두고 했다. 처음엔 왜 이딴 걸 만들어 놨나 했더니 거시기 관련 조크가 좀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걸 노출시킬 만한 가치는 없다... 흉악한 꼴을 볼 뿐이다... 저작권 프리 음악 옵션이 있는 것도 독특하다. 이 게임의 스트리밍을 막을 수 없다면 아예 퍼뜨려서 홍보하겠다는 전략이었던 듯하다.
아쉬운 점)

이번에는 키보드로 플레이했는데 QTE가 이상하게 불편했다. 특히 마우스 조작이 힘들었어서 패드 플레이를 추천한다.

선택지 함정이 좀 있다. have a seat을 누르면 의자를 던지는 그런 류인데 웃기려는 의도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토리에 큰 기대 없이 가볍게 플레이하기 좋은 게임이다. 텔테일 게임즈를 좋아한다면 플레이해 보아야겠고, 개인적으로 20-30% 할인이라면 주저 없이 살 것 같다.

(이 글은 2026년 1월 8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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